붉은 수수밭 5부 2장

작성일 2024.06.15 조회수 28

  • 등록일
    가입코드 : 전용도메인
  • 등록일
    가입코드 : 전용도메인
  • 등록일
    가입코드 : 전용도메인
  • 등록일
    가입코드 : 토토의 민족

작성자 정보

  • 오즈팀장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하숙집을 옮긴후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하느라 약간 애를 먹었지만 며칠이 지난뒤에는 평소와 같은 일상생활로 돌아갔다.
새로운 하숙집은 어려서 일찍 시집와 늙은 시부모를 모시고 외롭게 사는 청상과부나 마찬가지인 며느리가 주인이었다.
옛날에는 양반이라고 호령하는 집이었지만 세상이 바뀌고서 집에서 부리던 하인들도 다 면천하여 주었고, 그나마 남아있던 행랑살이도 주인댁 형편이 어려워지자 한사람의 입이라도 덜어 보고자 새로운 시절에 일찍 눈을떠서 일본놈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신흥부자집으로 남의집(머슴)살이를 갔다.
그래도 인심을 잃지 않아서 면천한 종들이 옛날 상전을 잊지않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쌀이며 잡곡을 가을철이면 가져와 생활은 어느정도 해가는 형편이었다.
자녀를 여러명 낳았지만 어려서 다 잃고 어렵사리 막내아들을 하나 구해 키웠지만 어려서부터 약골이라 좋다는 보약을 다 구해 먹였지만, 별 효용이 없었고 대를 이어야 한다는 마음에 어린아들을 일찍 장가를 보내서 며느리를 맞아 들였다.
허나 약골인 아들은 결혼후에 5년여 동안 앓아 누웠고, 상당히 많은 재산은 아들의 약값으로 또는 무당을 불러 굿하는 비용으로, 용하다는 점쟁이의 점 값으로 다 탕진한후 지금은 겨우 식구들 양식을 마련할 정도의 땅 밖에 남지 않아서 어떻게 가용돈이나 마련할 방법으로 하숙을 처음 시작하는 집이었다.

d0f50-65b05e6516254-bfc6aba597617515ed6b9adb30c0e5a6c5ea68f2.webp
처음으로 하숙을 하는 집이다보니 여러모로 불편하였다.
더구나 내외를 하느라 이집 며느리는 밥을 해줄 뿐이었고, 방으로 밥을 가져다주는 사람은 늙은 시어머니 였다.
안채와 문간채가 멀리 떨어져 있는지라 나이가 많은 할머니가 밥상을 들고 오는것이 매우 힘들어 보였다.
그것을 보다못한 효원은 할머니에게 말했다.
"할머니!  힘드시니까요...밥상차려만 놓으세요. 제가 가져다 먹은후 빈 밥상은 도로 가져다 놓을게요."
"응? 무슨소리야?....."
"할머니 힘 드시니까 제가 가져다 먹는다구요."
"아이구..그럼 쓰나...힘 들어도 내가 가져다 주어야지......"
"괜찮습니다...저는 힘이 있잖아요...."
하며 팔뚝을 내 보이니 노인네가 웃으면서 그러라 한다.
그날 저녁부터 부엌앞에 평상에 밥상이 놓이면 효원은 가져다 먹거나 귀찮으면 평상에 앉아서 밥을 먹었다.
처음에는 할머니가 꼭 옆에 있다가 물을 가져다 주었지만, 효원이 몇번이나 사양을 하고나서 할머니가 오지않게 되었다.
효원은 할머니가 없으니 더 편하게 밥을 먹을수가 있었다.
아무래도 어른이 옆에 있어 시중을 들어준다는 것이 그렇게 불편할수가 없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내외를 하며 밥상을 봐 주더라도 효원이 보이면 부엌으로 숨던 며느리도 며칠 지나니 조금은 익숙해졌는지 마주치면 눈을 내리깔고 고개를 숙이고는 종종걸음으로 부엌으로 들어가거나 뒤안으로 돌아가 버렸다.
오래만에 여자품을 벗어나 공부에 열중할수가 있었다.
미순이집에 있었더라면 저녁이면 미순엄마의 보지가 생각나 공부에 집중할수 없었을터인데 멀리 이사를 오니 그런 생각이 들어도 밤중에는 갈수도 없고 낮에는 남이 볼까봐 더더욱 갈수가 없어 아예 포기를 하고나니 공부에 더 집중이 된다.
효원은 공부를 하다 머리가 띵하여 머리도 식힐겸 방바닥에 들어누워 호주머니에 들어있던 손수건을 꺼내어 봤다.
머리를 양갈래로 따고 세라복을 입은 여학생과 단발머리의 여학생이 생각난다.
자기의 코피를 닦아주던 부드러운 손 정말 예쁘다고 생각한 여자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내일은 학교가 여학교보다 일찍 끝나니 그 여학생을 만나 보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효원은 마음먹고 여학교의 교문이 멀찍이 보이는 곳에서 학교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하학종이 울리고나자 조금있으니 많은 학생들이 교문을 빠져 나간다.
모두들 교복을 입고 있으니 도저히 알아볼수가 없다.
전부가 다 그 여학생 같기도하고 아닌것 같기도하고 도무지 알아 볼수가 없다.
한떼의 학생들이 구름떼같이 지나간뒤 효원은 찾는것을 포기했다.
물론 찾는다해도 이 많은 학생들이 있는데서 어떻게 이름을 부를수 있겠는가?
아무리 세월이 변해 남녀칠세 부동석이라는 말이 구식이 되었다해도 어떻게 대낮에 남자가 여자를 부르겠는가?
'어림도 없는 소리다. 아무리 세월이 변해도 아직은 동방예의지국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나서 발길을 돌려 하숙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몇 걸음을 걸을때 갑자기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긴상! 긴상! 긴 효원씨!"
효원은 자기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니 아! 자기가 만나보려고 애써 찾은 그 여학생이 친구와 함께 있는것이 아닌가?
반가운 생각이 왈칵 들었다.
"안녕 하세요!"
"네! 안녕 하세요!"
"긴상! 저도 안녕 하세요예요!"
"예? 아!..예!"
"긴상! 그렇게 불러도 대답도 없이 갈수 있어요?"
"네? 저를 불렀다구요?"
"네에...우리가 학교 운동장을 다 지나왔을때 긴상...아니 음...효원씨..그래 맞아 효원씨를 애희가 먼저 보고 나에게 말해서 내가 효
원씨를 불렀지요. 그런데 대답도 않고 뒤 돌아 가던데요. 그런데 어쩐일이세요?"
".....두 분을 뵐려고요."
"우리를?"
"예!"
"무슨일로.....?"
"지난번일 고맙다구요. 그리고 손수건을 돌려 드리려고요."
"호호호..난 또 무슨일로 우리를 만나시려나  했네.....호호호...나를 혹시 나를 좋아해서 만나려나  했는데....호호호호호.. ...."
미찌꼬가 호들갑스럽게 웃으며 효원을 놀렸다.
애희도 빙그래 웃으며 효원을 슬며시 바라보았다.
효원은 얼굴이 약간 붉어짐을 느껴지만 그런말을 하는 미찌꼬가 밉지만은 않했다.
효원이 지난번의 일에 대한 고마움을 보답하는 마음으로 양과자를 샀다.
양과자점안에 들어서서도 미찌꼬는 효원을 은근히 놀렸다.
"효원씨! 어때요. 애희를 보러 오셨어요?....아니면 나를 보러 오셨어요?"
"얘는...."
"괜찮습니다....재미 있는데요. 아주 발랄하십니다."
"그렇지요?...그런데 내가 이러는걸 애희는 싫어해요....아이 슬퍼..엉엉엉...."
우는척 하는 미찌꼬가 아주 귀염성이 있다.
일본여자 치고는 매우 아름답다.
세 사람은 양과자를 먹으며 담소를 하며 웃음을 떠트렸다.
효원은 어떻게 애희와 둘이만 있을 기회를 기다렸는데 마침 미찌꼬가 화장실을 가는지 자리를 잠깐 비웠다.
그 사이에 탁자밑으로 애희의 손을 더듬어 잡자 애희는 움찔하며 손을 빼려다 과자점 주인을 잠깐 바라보고 가만히 있었다.
효원이 호주머니에서 애희를 만나면 전해줄려고 쓴 쪽지를 꺼내어 애희의 손안에 쥐어주며 눈으로는 아무말도 말라는 시늉을 했다.
그러는사이 미찌꼬가 돌아왔다.
애희는 효원이 쥐어준 쪽지를 미찌꼬 몰래 품속에 넣고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지난번 효원이 코피를 흘리고 있을때는 어쩐지 모르고 코피도 닦아주고 얼굴도 만지고 했지만, 오늘은 효원의 손이 탁자밑에서 잡아올
때는 '누가 이러는것을 보고 있지나 않을까' 하는 마음에 과자점 주인을 보니 역시 그 일본여자는 두 사람을 유심히 보고 있는지라 효원이 손을 잡아올때 온 몸이 찌르르하는 느낌을 받고 자기도 모르게 손을 빼려다 가만히 있게 되었다.
움직여서 손을 빼려하면 둘이 탁자 밑에서 손으로 이상한짓을 하는것 같이 여길까 염려스러웠던 것이다.
미찌꼬가 돌아오자 효원이 일어나 인사를 하고 가버리자 미찌꼬는
"어머! 효원씨! 효원씨는 내가 싫은 가봐요....내가 돌아오자 가시니까요."
"아뇨!...나도 미찌꼬상이 좋아요. 그럼 다음에......."
효원은 목적을 달성 했으므로 과자점 주인의 눈치가 조선인이라고 멸시하는것 같아 더 이상 있기가 싫어 작별인사를 하고 나왔다.
미찌꼬는 애희를 보고 효원을 보고 자기가 느꼈던 감정을 숨김없이 이야기한다.
"애희야. 저 효원씨 사람 괜찮겠다. 내가 조선인이라면 한번 사귀어 볼텐데.....네가 한번 사귀어 봐..."
"얘는....."
"아냐...조선인 치고 괞찬아.....참! 미안! 너하고 있을때는 조선인, 내지인,(일제시대 때 한국에 나와있던 일본인들은 일본땅을 내지라고 했다.) 구별하지 않기로 했는데......미안하다."
"아니야....괜찮아...너 하고 나 사이에 무슨 미안이 있니...."
"역시 너는 나의 유일한 벗이야...호호호호...."
"하여튼 너는 못 말려....후후후...자 이제 가자."
"응! 그래 가자!"
두 여학생이 나가자 일본인 주인여자는 입을 삐쭉거리며 혼자 중얼 거린다.
"되먹지도 않은 조센징년놈들.....아유 미찌꼬상만 아니라면 그것들을 그냥 내 쫓아내는건데......."
미찌꼬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온 애희는 자기방으로 들어와 교복을 벗고 품속에 넣었던 쪽지를 꺼내어 읽었다.
"사랑하는 애희씨.....죄송 합니다.
겨우 한번 만나본 사람을 사랑한다고 표현한 나를 매우 불량스러운 학생이라고 하시겠지요.
그렇게 생각하셔도 나는 할수 없읍니다.
그러나 지난번 내가 쓰러져 있을때 나를 안타까이 내려다보던 그 아름다운 모습이 나에게는 잊을수 없는 모습으로 내 머리속에 각인이 되었습니다.
'아!! 내가 이상의 여인을 만낮구나' 하는 느낌이 내 머리를 때리는 순간이었구요!
정말 애희씨와 단둘이 조용한 곳에서 만나고 싶습니다.
삼일후 연벽정에서 초경(밤8시)무렵에 기다리겠습니다.
안 나오셔도 괜찮습니다.
애희씨를 기다리는 마음을 갖는다는 것만으로도 제게는 영광이니까요.
사랑합니다. 애희씨...."
애희는 난생 처음 연서를 받아서 읽어보니 조금은 유치한듯 하긴해도 어쩐지 마음에 와 닿는듯 하다.
깊숙한 마음의 옹달샘에 "퐁당" 하고 돌을 던져 마음속에 파문이 번져 간다.
애희도 효원을 처음 봤을때 마음이 울렁거렸다.
그래서 효원이 쓰러졌을때 자기도 모르게 미찌꼬에게 가보자고 했고, 쓰러져 코피를 흘린 얼굴을 스스럼없이 손수건을 꺼내어 닦아주었던 것이다.
쪽지를 손에 쥐고 눈을감고 효원의 얼굴을 떠 올려 보았다.
훤칠한 키에 하얀피부, 시커멓게 숱이 많은 눈썹, 호수처럼 깊고 맑아보이는 눈, 우뚝솟은 콧날, 두껍지도 얇지도 않은 입술, 등등..여러부분이 떠 오른다.
특히 강렬하게 남는것은 새하얀 피부와 부드러운 살결이었다.
남자의 피부가 꼭 분 바르고 꾸미는 여자들 같은 살결이어서 분명 부잣집 막내 도련님인 것 같다.
애희는 마음을 정할수가 없었다.
마음의 감정은 그곳에 가 보고 싶기도 하지만 냉철한 머리의 이성은 '그곳에 가면은 안돼' 하는것 같았다.
더구나 부모님이나 오빠들이 알게되면.......다음은 생각하기도 싫었다.
애희의 아버지는 어려서부터 송상(개성상인)들을 따라 다니며 장사를 배워서 어느정도의 물목을 익힌뒤 따로 독립을 한 후 시대가 바 뀌면서 혼란한 틈을 타 새로운 신식물건을 취급해 매우 많은 돈을 번 신흥부자였다.
00부(府)에서는 애희 아버지가게를 거치지않는 물건이 없을 정도였다.
애희의 아버지의 가게 개성상회는 00부(府)뿐만 아니라 경성에서부터 평양, 최근에는 저 멀리 신의주까지 지점을 설치했다.
집에는 어머니와 일하는 하녀들뿐이었고, 아버지인 박사장은 보름에 한번정도 집에 들렸다.
아버지가 집에 오시면 일주일정도 계시면서 이곳의 일을 처리하고는 또 다시 사업차 나가시는 것이다.
애희는 아버지가 오시는 날이면 마음을 설레며 기다렸다.
박사장은 막내딸인 애희를 끔찍이도 위했다.
아들들에게는 무척 엄했지만 고명딸인 애희는 불면 날아갈까 잡으면 꺼질까하며 애지중지 키웠다.
그렇지만 가정교육만은 엄하게 시켜 예의바른 생활이 몸에 배도록 가르켰고 자기가 솔선수범하여 그 당시 돈 있는 많은 사람들이 하는축첩이나 오입질 또는 도박같은 것은 멀리 했다.
박사장은 많은 돈을 벌었지만, 송상들의 생활습관으로 근검절약하면서 헛되이 낭비를 하지않았다.
그러나 자식들에게 들어가는 돈은 투자한다는 생각으로서 두 아들과 고명딸을 위해서는 많은 돈을 썼다.
애희의 큰 오빠는 지금 동경제대 의학부에서 의대생으로 공부를 하고 있고, 둘째 오빠는 역시 동경에서 큰 오빠와 같이 하숙생활을 하며 동경제대 법학부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애희도 오빠들을 따라가고싶어 했지만 어머니가 극구 반대를 했고, 오빠들도 반대를 해서 경성에도 못가고 이곳 고향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애희의 배경이 이 정도 되니까 이곳의 경찰서장도 자기딸이 애희와 사귀는 것을 반대하지 않았고, 집으로 같이 놀러라도오면 자기 마누라에게 잘 대접하라고 할 정도였다.
그 당시에도 재력이 있는 조선인들에게는 일본사람들도 함부로 못했다.
많은 땅도 마련한 박 사장은 소작인들에게도 야박스럽게 굴지않고 너그럽게 대했다.
그래서 돈이 많은 부자라고 손가락질 받지않고 인심을 얻고 있었으므로 그곳에 있던 일본사람이나 일본헌병대에서도 어느정도 인정하는 사람이었다..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승부예측 포인트 이벤트




알림 0